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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탄생 100주년 문학기행: 그가 일본에 남긴 객고의 흔적을 따라

 

이국땅 바람에 스치우는 별을 하나둘 헤아리며,

나의 길 새로운 길을 찾아 오늘도 내일도걷고, 또 걷네

 

 

 
이번 문학기행을 통해 최초로 공개되는 사진이다. 도시샤대학 교우들과 아마가세 다리 위에서 찍은 것으로 왼쪽과 오른쪽 아래 아마가세 다리 전경.

 

   

1948년에 출간된 윤동주 시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초판본.

 

1

2017년 늦가을, 일본. 윤동주 시인의 발자취를 찾는 문학기행에 따라나섰다. 첫 행선지는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학 교정에 있는 윤동주 시비이다. 간사이공항을 도착하자마자 이곳부터 달려왔다. 시비는 교정의 붉은 벽돌 건물 사이에 위치해 있다. 검은 돌에 그의 시 <서시>가 그의 육필로 형상화되어 새겨져 있다. 1995216일에 세웠다고 쓰여 있다.

   윤동주는 1917년 만주 용정시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평양의 숭실학교를 다녔고 서울 연희전문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1942년 사촌형 송몽규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는 한글로 글을 쓰지 못하게 했을 정도로 극에 달했던 일제강점기 때였다. 윤동주는 일본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쉽게 씨워진 시>에서 볼 수 있듯이, 그해에 집필된 시편에서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번민하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윤동주는 도쿄 릿쿄(立敎)대학을 거쳐 1943년 교토 도시샤대학 영문학부에 편입했다. 그리고 여섯 달 만에 사촌형 송몽규와 함께 유학생 독립운동 단체와 관련된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곳 윤동주 시비 옆에는 시인 정지용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를 번갈아보며 그들의 애틋한 인연을 떠올린다. 윤동주가 교토의 도지샤대학으로 옮긴 건 사촌형 때문이기도 했지만 시인 정지용을 흠모해서였다. 정지용은 1924년부터 1929년까지 6년 동안 이곳에 있었으니 영문과 한참 선배인 셈이다. 메이지 때 일찍 미국을 유학한 기독교인 니지마 조(新島襄)가 세운 이 대학의 학풍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정지용과 윤동주는 이곳에서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유를 꿈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지용이 머물렀던 1920년대와 윤동주가 머물렀던 때의 교토 분위기는 너무나 달랐다. 정지용이 유학시절은 비교적 자유로운 시절이었다면, 1943년은 군국주의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도발했던 가장 극악한 시절이었다.

   윤동주는 생전에 시집을 낸 적이 없는 무명의 시인이었다. 그의 시를 세상에 알린 건 정지용 시인이었다. 해방 후인 1947213일자 경향신문'에 처음으로 <쉽게 씨워진 시>를 소개했다. 그리고 1948년에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가 출간되었는데, 역시 정지용이 서문을 썼다.

   또 다른 시비가 세워져 있는 그의 하숙집 자리를 찾아간다. 도시샤 대학으로부터 동북쪽에 있는 그곳 시모가모(下鴨)로 가려면 가모 강을 건너야한다. 윤동주는 등하교길 틈틈이 강변을 산책했을 것이다. 정지용의 시 <압천>의 한 구절인 가모가와 십리벌에/해는 저물어저물어를 되뇌며…….

   당시의 하숙집 건물은 사라졌고 그 자리엔 교토조형예술대학 분관이 들어서 있다. 윤동주는 이곳에서 검거되었을 것이다. 이곳을 일본 경찰에게 압수수색 당했을 것이고 몰래 한글로 썼던 그의 많은 시편들도 빼앗겼을 것이다. 이곳의 비석에는 윤동주 유혼지비라고 쓰여 있다.

    

 

 

도시샤대학 교정에 세운 윤동주 시비(왼쪽)와 하숙집터에 세운 표지석.

 

 

2

드디어 사진 속의 다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윤동주 시인인 서 있었을 그 자리에서 청록의 강물을 하염없이 내려다보았다. 교토 우지(宇治)시의 우지 강 상류에 있는 이곳 아마가세() 다리는 일본의 어느 곳보다 그의 자취가 진하게 배어 있는 곳이다.

   19436월 고국으로의 귀향을 앞두고 윤동주는 도지샤대학 친구들과 함께 송별을 겸한 야유회를 가졌다. 그리고 이곳 구름다리에서 생애 마지막 모습을 사진에 남겼다. 나는 몇 년 전 그의 일본인 동문에 의해 발굴된 사진을 지면으로 조우한 후로부터 이곳에 와보고 싶었다. 강물이 흐르는 협곡에 세워진 구름다리는 당시에도 명물이었을 것이다. 쇠줄이 지탱하고 있는 이 다리가 개통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였다. 다리로 가는 하류 쪽 입구에는 현재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뵤도인(平等院)이라는 큰 절이 있다. 1052년에 세운 이 고찰은 일본의 국보가 무려 7점이나 소장되어 있다. 당시에도 교토시민들에게 인기있는 교외나들이 장소였을 것이다. 아마 윤동주와 학우들 또한 뵤도인을 관람하고 올라왔을 것이리라. 그의 동창생의 기억에 의하면 강변에서 밥 지어 먹고 한잔하며 노래를 부르던 즐거운 자리였다고 했다. 이때 윤동주는 흥에 겨워 아리랑을 불렀다고 했다.

   그런 인연으로 우지시의 일본인들은 그의 흔적이 있는 이곳에 윤동주의 시비를 세우기를 고대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거부했고, 무려 12년 동안의 설득 끝에 201710월에 시인 윤동주의 기억과 화해의 비를 세웠다. 구름다리보다 더 상류 쪽에 새로운 다리를 건설하면서 그 귀퉁이의 공간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시비에는 그의 시 새로운 길이 그의 마지막 숨결인 듯 의미심장하게 새겨져있다. 나는 세운지 열흘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화강암의 시비에 새겨진 시를 또박또박 읽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고개를 넘어서 마을로//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나의 길 새로운 길//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오늘도 내일도/내를 건너서 숲으로/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 <새로운 길> 전문

 

 


기억과 화해의 비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

 

3

후쿠오카(福岡)를 향해 오사카 남항에서 페리를 탔다. 목적지를 가기위해 기타큐슈의 신모지(新門司)항까지는 바닷길을 택했다. 칠흑의 바다를 가르는 밤배는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는 듯 세토내해는 고요했다. 하지만 갑판에 나가니 바람이 요란하게 얼굴을 때렸다. 밤하늘에는 오리온 별자리가 선명하게 찍혀있었고 시리우스가 커다랗게 반짝거렸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이미지가 떠올라 환호했다.

   윤동주는 1943714일 교토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거되었다. 그리고 2년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후쿠오카로 이송되어 감옥살이를 했다. 그리고 악랄한 일본 군부에 의해 생체실험을 당했다. 1945216일 조국의 해방을 앞두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향년 27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후쿠오카현립대학의 니시오카 겐지(西岡健治) 교수의 안내로 지금은 사라진 후쿠오카형무소 자리를 둘러보았다. 지금 그 일부는 후쿠오카 구치소가 들어서 있다. 니시오카 겐지 교수는 윤동주와 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고전소설 전공자인 그는 30대 후반에 연세대학교에 유학했는데, 그때 윤동주의 시를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건넨 당시 후쿠오카형무소 사진을 보니 한눈에 엄청난 규모가 펼쳐진다. 하늘에서 찍은 형무소는 높은 담장 속에 마름모꼴로 긴 지붕이 이어져 있다. 보기만 해도 전체주의의 억압과 살기가 느껴진다. 그를 따라 형무소 자리 주변을 걸었다. 큰 도로를 벗어나자 무로미(室見) 강의 지류인 가나쿠주 천이 나타났다. 전날 내린 폭우로 인해 물이 많이 불어있었다. 강을 옆으로 끼고 이동해 윤동주가 거처했을 옥사의 터에 다다랐다. 지금은 공터의 어린이 공원이 되어있다. 그는 해마다 이 자리에서 후쿠오카,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회원들과 함께 추모 행사를 연다고 했다. 윤동주가 생을 마감한 날인 216일을 전후로 그의 시를 읽으며 그를 기린다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죽어가야 했던 27세의 젊은이 윤동주 시인에게.

 

  남궁산 판화가 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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