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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리버럴아츠 교육을 생각하며

 

시대정신과 가치를 함께하는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

 

사고치고 상상할 수 있는 교육 방법론적 고민이 있어야

 

 



 

30년 전의 지식인(학자와 전문가 포함)들 중에서 오늘날 우리 앞에 놓인 지금의 세상을 예측한 이가 몇이나 될까요. 당시만 해도 컴퓨터 없으면 업무 일체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는 예측은커녕 컴퓨터가 손작업만 못해 거추장스럽다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사람이 다른 동물종과 다른 까닭이 합리적 예측이 가능한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던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30년 뒤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요. ‘초시대(超時代)’라는 신조어가 생겼지만, 세계적인 석학이라 일컫는 유발 하라리·재레드 다이아몬드·닉 보스트롬 등(이들의 인터뷰를 모은 초예측, 오노 가즈모토 엮음, 웅진지식하우스 참고)도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만 할 뿐, 심지어는 그 변화가 인간에게 이로울지 해로울지조차 예측이 불가하다고 말합니다. 물론 인간이라 함은 소수 1퍼센트 특권층이 아닌 다중을 뜻하는 것입니다.

 

   암기와 카피의 늪

   상상력과 창의력은 지식·정보·경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창의는 모방과 응용(또는 융복합과 習合)이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이를 수 없는 경지입니다. 우리는 경제개발5개년계획으로 시작된 1960, 70, 80년 개발우선시대를 살면서 암기와 카피만으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 경제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미국, 일본)의 기술을 모방하여 따라가면 생산과 경제 활동이 얼마든지 가능했던 것이지요. 모방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부가가치도 높았지요.

   이 시대의 교육은 원리와 공식(산식)을 암기하면 됐지, 이를 이해하거나 응용할 필요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교육이 오직 국가생산의 도구였던 시대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우리나라의 교육은 이 안에서 천편일률적 이었습니다. 창의력보다는 베끼기 중심의, 그것도 기술 우선 교육이었기에 암기와 모방으로 이루어진 교육이 문제없이 작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반공과 애국심을 곁들인 정신교육(정신적으로는 도덕, 육체적으로는 교련 교육 등)이면 그만이었습니다. 이것이 또한 교양교육의 요체였습니다. 부언하자면 교양교육이 시민교육일 터인데, 전체주의적 국민교육으로 왜곡되어졌던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실체(진실 또는 진리)보다는 의견으로 조성된 집단가치관에 얽매여 이념적 이데올로기의 가치판단 틀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니체 식으로 말하면 주체적 인간이 되지 못한 것이지요. 마땅히 폐기되어야 할 모방과 답습의 프레임과 마인드가 초시대를 운운하는 21세기 우리의 교육현장에서 여전히 작동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된 실험

   우리 대학은 일찍이 새로운 교양교육의 필요성을 깨닫고 교양교육원이 교무연구처로부터 독립한 2009년 이후 선진적인(타 대학보다 앞선) 교양교육을 표방하며 추진해왔습니다. 그리고 만10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 H-LAC도 탄생하였습니다. 리버럴 아츠 교육(근본주의적 성격에서의 리버럴아츠[자유7학예: 3, 문법 수사학 논리학, 4, 대수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은 우리 대학만의 새로운 교양교육 프레임 구축과 우리 사회에서의 인문학 대두(도는 흥행)가 맞물려 추진 동력을 얻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인한 인문정신(자본 도덕) 필요성과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과 통신과학기술을 접목시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한 것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이윤창출이 최고 또는 궁극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볼 때 생산단가를 혁신적으로 낮추거나 새로운 형태의 재화 양산 모델 창출을 필요로 합니다.

 

   인문학 중 한 분야를 가르치는, 30여 년 경력의 모 교수가 내가 지금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교육이 과연 필요하고, 올바른 것인가?’ 라는 회의가 들 때가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가르치고 있는 학문 또는 교육법이 시대에 뒤처진다는 고민으로 들렸습니다. 우리가 세상살이를 하는 데 있어 필요한 것은 지식·정보·경험에 있을 것입니다. 대학은 최고 지성들의 진리탐구의 장이라고 하지만, 이 진리는 자본논리에 의해 좌우된지 오래이고, 지식이 재화(이윤) 창출의 수단 또는 종복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나마도 과거에는 이 지식이 대학 안에서 생성-발전하며 머물거나 밖으로 흘러나갔는데, 지금은 대학 밖에 어쩌면 더 깊고 강한 지식이 형성되어 대중지성 형태로 회자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다면, 적어도 대학이 최고 또는 최신 지식을 가르쳤던 장으로서의 메리트는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을 치면 수두룩 빡빡한 게 지식입니다. 물론 단편적·파편적·개념적 지식이지요.

 

 

 

   대학의 서열, 교육의 차별성

   때문에 이제는 이 지식들을 어떻게 분석·해석하고 평가하고 편집 및 가공할 것이냐가 교육의 화두가 되어야 하고, 대학은 학습의 정도에 따라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를 중심으로 한 교육법이 구축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 교육 방식도 교육자 수준이 아니라, 피교육자의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학에 서열이 있으니 교육방식에도 단계적 차별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지식의 광장화와 창의적 교육의 필요성 측면에서 볼 때, 대학 교육이 과거처럼 대학과 전공 안에 머무를 수 없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즉 상식과 교양으로서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두 해 전쯤으로 기억됩니다만, 아랫녘 대학에 근무하는 모 교수가 이런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기업에서 인문학자를 초청하여 특강을 듣고 사회적으로 인문학 바람이 부는데 정작 대학에서 철학과는 망해가고 있다, 이것이 될 법한 일인가. 대략 주장의 골자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통으로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문학·역사·철학이 서로의 공고한 영역(울타리) 속에서 따로 따로 다루어집니다. 전공 틀이라는 학문영역 안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배타적 경쟁 상대이지 협업 또는 융·복합 상대가 아닙니다. 그리고 문학 역사 철학이 각각의 학과 별로 학문연구의 대상이지 사고력과 창의력 함양 대상(또는 수단)이 아닙니다. 기업이 요구하는 것은 순수학문이 아니라, 사고력과 상상력과 창의력인 것이지요. 즉 인문학적 사고력과 상상력이 새로운 재화와 소비시장을 개척하는 원천이자 동력인 것입니다. 리버럴 아츠 교육이 학문 간의 경계를 떠나 통으로 뭉쳐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교육은 인적자원 계발

   우리는 자본주의시대를 살고 있고, 이 시대를 작동하는 원리는 자본(이윤)입니다. 교육이라고 해서 자본논리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닐 터이기에 이를 무조건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본 중심 시대에는 생산단가를 줄이거나, 새로운 가치를 만들거나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과거 영국 대처가 신자유주의에 목을 매 노동단가를 낮추고 공공복지를 줄인 것도 다 제품단가를 낮춰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려는 조처였던 것입니다.

 

   리버럴 아츠 교육은 자본주의를 지켜주고 자본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잠재적(또는 현실적) 동력이 될 수 있기에 각광을 받는 것입니다. 고대 이후, 중세-근대-현대를 거치면서 행위 없는 이론학문으로 변질된 리버럴 아츠 교육은 지금의 세계나 우리 사회가 원하는 교육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리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이윤창출의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전공단위의 개별적 문학·역사·철학은, 안타깝지만 과거의 영광을 벗어나 유용성과 효용성에 많은 훼손을 당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인문학이 인간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이 인간세상을 선도하는 시대가 된 것이지요. 인문정신에 과학이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학에 인문정신이 머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문화가 아이폰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잡스가 인문학적 가치 속에서 편집·양산한 아이폰이 우리의 사고와 생활문화를 바꾼 것입니다.

 

   인문학, 양날의 칼 그리고 표현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있어서의 철학은 곧 일상이고 밥이었습니다. 즉 삶을 위해 철학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철학이 근대로 넘어오면서 지식(학문) 속에 갇혔습니다. 이후 일체의 전공학문도 학계의 시스템이 만든 개별 전공의 프레임 속에 갇혀 수백 년 동안 동종교배 속에서 자가발전을 반복하여 왔습니다. 세상은 보다 나은 가치를 찾고자 하나가 되었으나, 학문은 그 정통성과 정체성수호를 위해 학문의 틀 속에서 하나가 되어온 것입니다.

   오늘날의 인문학은 재화의 신모델창출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인간가치의 존엄을 지키는 보루로서 중차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인문학은 양날의 칼인 셈이지요. 그래서 인문학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리버럴아츠 교육을 생각해볼 수 있을까요.

   △우선 개별 전공학문의 집합체가 아닌, 보편타당성과 합리적 필요성을 인정받을 만한 리버럴 아츠 교과목의 정립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개별 전공 중심의 매진이 아니라 통 개념의 리버럴 아츠에 집중하는 것이지요.

   △무엇을 보다, 즉 교과목 수립 못지않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암기가 아닌 이해로서의 교육, 사고력과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교육, 분석하고 해석하고 편집할 수 있는 배경지식으로서의 교육을 고민해야 합니다. 배경지식이 될 수 있는 기본과 교양 습득을 통해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를 이해-분석-평가하고 이를 편집-재가공할 수 있는 힘(기초체력 또는 통찰력)을 키워줘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공부의 최종 목적은 자기 방식의 표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배운 것을 기반으로 자기 방식의 표현을 할 수 없다면 굳이 교육 받을 이유도, 공부할 이유도 없는 것이겠지요.

 

   일본 가나자와공대는 어디까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라는 두 가지를 고민했다고 합니다. 학생 수준에 맞춘 교육을 한 것이지요. 중 또는 중하위권 학생을 받아 중상위권 학생으로 육성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습니다. 그리고 이 목표가 적중했고 달성했습니다. 가나자와공대를 특화된 맞춤형 교육으로 유명한 지방대학으로 인정합니다만, 이른바 우수인재를 유치·육성하는 명문대학이라고는 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리버럴 아츠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학생 나름의 인문적 사고력과 상상력을 키워 제 나름의 창의적 모델을 창출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고광률 상임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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