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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24의 힘!-④>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고전은 전범·전형(典範·典型)을 담고 있기에 가치가 큽니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가 있습니다. 고전은 바로 이러한 점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오늘날 독서는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기호인 양 인식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고와 상상의 원천이 독서일진대 독서를 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방도는 없습니다. 역설적이지만, 독서가 싫은 사람일수록 고전을 읽어야 합니다. 고전 한 권이 일반서(대중서·개념서) 100권 또는 1000권을 갈음하기 때문입니다.

  《고전 24의 힘!시리즈는 인문·사회·자연·응용 과학 부문의 고전 24권을 선정하여 앞으로 3년에 걸쳐 유명 인사들의 독서체험을 바탕으로 한 소개글을 받아 연재할 계획입니다. 구성은 필자(또는 화자) 소개, 집필 배경, 주요 구성 내용, 당대 및 현재의 의미와 가치, 읽어야만 하는 이유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학우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일독을 바랍니다. <편집국씀>

 

 


남궁산 (판화가)

 

뉴욕타임스에서 선정한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 지금 인터넷상의 많은 블로그나 카페 등에서는 예의 제목으로 필독을 권유하는 글을 많이 만날 수 있다. 100권의 고전 목록이 문학, 인문, 사회, 과학, 예술과 기타 부분으로 나뉘어서 소개되어 있다. 카뮈의 이방인을 비롯한 문학도서 30, 프로이트 꿈의 해석을 포함한 인문서적 30권과 사회서적 20, 그리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포함된 과학서적 10권과 예술과 기타 도서 10권의 목록이다. 하지만 그 선정기준과 출처를 분명히 알고자 좀 더 꼼꼼하게 검색을 하다가 아연실색하며 놀랐다. 이른바 가짜 기사인 것이다. 리스트의 출처는 뉴욕타임스가 아니라 19991231일 자 한겨레신문의 ‘20세기를 기록한 책 100이다. 당시 2000년대의 새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쓴 문화면 특집 기사였다. 기사 서두에는 책의 선정은 영국의 서평지 로고스와 일간지 더 타임스,뉴욕타임스, 그리고 국내 서평지 등의 도움을 받아 자체 기준을 더 했음이 밝혀져 있었다. 아마 그 기사를 읽은 누군가가 출처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슬쩍 신문사를 바꿔치기한 것일 테다. 그리고 블로거들이 생각 없이 퍼 날랐을 것이다. 아직도 만연해 있는 이런 서구지향의 문화종속 행태가 안쓰럽고 씁쓸하다.

   아무튼 ‘20세기를 기록한 책 100중에서 예술 부분은 기타 도서와 합쳐 10권이 할당되어 있다. 그중 겨우 단 2권만이 예술 관련 도서인데,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와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세계사이다. 이 두 권의 책은 특히 우리나라의 독자들에게 서양예술사의 양대산맥으로 자리잡았다. 저자들은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에 망명해있던 유대인 학자들이었는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50년과 1951년에 영국에서 나란히 초판이 출간되었다.

   1950년 출간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미술사를 당당한 역사의 영역에 올려놓은 책으로 평가받으면서, 그 후 16판을 펴냈으며 32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600만 부나 팔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다.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또한 예술이 시대와 사회가 빚어낸 산물이라는 예술사회학의 관점을 선구적으로 펼친 책으로 평가받았고, 1951년 첫선을 보인 이래 지금까지 2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지식인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그렇지만 예술의 사회적 의미에 초점을 맞춰 서술하느라 미술가와 작품의 개별성을 등한시했다는 평도 있다. 이에 비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보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개별 예술가들이 무엇을 어떻게 재현하고 표현했느냐에 보다 집중해서 저술되어있다. 그래서 이 두 권의 책을 서로 상호보완해서 읽는다면 서양미술사의 기초를 든든하게 잘 다지게 되는 셈이다. 둘 중 어떤 책이든 먼저 읽어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역시 이론적인 배경을 강조하는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 비해 비교적 읽기 쉬운 서양미술사를 먼저 접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다.

   『서양미술사의 저자인 에른스트 한스 요제프 곰브리치190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이자 교수였고, 그의 누나도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곰브리치 역시 첼로연주를 즐겼다고 하니 그 배경과 분위기를 익히 알 수 있다. 그는 1928년부터 1933년까지 빈 대학에서 미술사와 고전 건축학을 공부했다. 1936, 27세의 청년이었던 그는 청소년을 위한 역사책 곰브리치 세계사을 출간했다. 출판사로부터 역사책을 번역 의뢰받았는데, 자신이 더 좋은 역사책을 쓸 수 있다는 판단하에 직접 집필해서 6주 만에 출간했다. 아마 곰브리치 세계사가 없었다면 서양미술사또한 없었을 것이다. 곰브리치 특유의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의 방식은 이 책에서부터 비롯되었다.

   1936년 그해에 유대인이었던 곰브리치는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바르부르크 연구소와 런던대 출강을 하면서 서양미술사를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0년에 서양미술사가 출간되었고, 그 후 유명세에 힘입어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석좌교수를 역임하였다. 곰브리치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가지 않았고 200192세로 런던에서 사망했다. 그 밖에 저서로는 예술과 환영(1975), The Sense of Order(1979) 등이 있다.

   『서양미술사의 원제는 The Story of Art이지만 서구미술 위주로 저술되었기 때문에 국내의 번역본은 당연히 서양미술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곰브리치는 낯설지만, 매혹적으로 보이는 미술이라는 분야에 처음 입문하여 약간의 오리엔테이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이 책을 쓴다고 말한다. 서양미술사청소년을 위한 미술사 입문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 독자들도 이 청소년용 책을 처음 접하면 부담스러워한다. 우선 687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책 두께와 작고 촘촘한 글자체에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술사의 배경인 서양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사전지식이 아무래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불필요한 전문용어를 가능한 한 배제하고 친숙한 문체로 쉽게 쓰여있어서 누구나 천천히 읽다 보면 금방 따라갈 수 있다. 시대와 양식에 관한 서술과 무려 413점에 이르는 도판 이미지를 보면서,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미술과 역사가 보이고 미술가와 작품이 흥미롭게 다시 보인다.

   『서양미술사는 선사시대 동굴벽화부터 20세기까지의 미술사 전반을 다룬다. 서론 이후 고대, 중세, 르네상스, 매너리즘의 시대를 거쳐 바로크, 로코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그리고 인상주의 등과 20세기 현대미술까지 28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 장은 당대의 역사적 사건이나 시대의 분위기로 시작해서 시대의 양식, 그리고 작가와 작품들이 차례로 서술되어 있다. 본래 초판본은 27장이 마지막 장이었으나, 11판 이후 현대미술에 대해 저자가 수정하고 증보했다. 마지막 28장은 1950년대의 추상표현주의와 1960년대의 팝아트 등을 다루고 있고, 또 현재 생존해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 같은 미술가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서양미술사의 서론은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언뜻 듣기에도 거대담론보다는 미시적 개별성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대와 환경에 따라 미술의 정의가 변하기 때문에 고유명사 미술은 존재하지 않고 어떤 목적에 따라 무엇을 표현하는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곰브리치는 개인적인 습관과 편견을 버리려고 하지 않는 태도는 미술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말한다. “어떤 시대와 양식에 대한 성급한 일반화보다, 시대별 조화에 대한 이해와 감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미술의 모든 역사는 기술적인 숙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변화하는 생각과 요구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즉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느냐의 차이일 뿐, 기술의 숙련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거다. 미술가들이 당면한 상황이나 지향성에 따라 미술이 변화한다고 말한다. 미술의 역사가 변화하는 생각과 요구에 대한 것이라면 그것은 어떻게 표상되는 것일까? 곰브리치는 아는 것보는 것그리고 느낀 것등의 순환구조로 설명하고 있다.

 

   “이집트인들은 대체로 그들이 존재한다고 알았던것을 그렸고, 그리스인들은 그들이 것을 그린 반면에 중세의 미술가들은 그들의 느낀것을 그림 속에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이다.”

 

   주술이나 종교 등에 종속되어 있었던 원시미술과 이집트 미술에서는 인간이 아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물에 대한 본질을 탐구하기 시작하면서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을 중시하게 되었다. 곰브리치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적 형태와 단축법을 발견한 고대 그리스 시대는 미술의 역사에서 대혁명의 시기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중세 시대의 미술가들은 문맹자들에게 성경의 내용과 가르침의 전달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느낀 것을 표현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세 후기에는 성경 이야기를 한층 더 감동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하나의 형상을 실감 나게 보이도록 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다시 자연을 관찰하기 시작했다라고 한다. 이때 나타난 화가가 조토였다. 1300년경 조토는 2차원 평면의 회화에서 3차원의 깊이감을 느끼게 하는 기술을 발견한 것이다. 곰브리치는 조토 이후로 미술사위대한 미술가들의 역사가 되었다고 강조한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린다라는 절대적 관념이 확대되었던 1400년경 르네상스 시대에는 다시 보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르네상스인들은 원근법의 발견과 인체에 관한 탐구로 객관적 사실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었다. 당연히 보는 것을 중시했던 고대 그리스 유산이 미술가의 눈에 들어왔고,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그 결정판이었다. 그러나 다시 주관적으로 르네상스를 극복하려 했던 매너리즘 시대를 거쳐, 균형을 무시하고 복잡한 구도와 빛과 색을 선호한 바로크 시대가 이어졌다. 이때 카라바조와 렘브란트 등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거부하면서 그가 본 그대로의 진실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이 시대는 가톨릭교회에서도 미술은 문맹자들만이 아니라 너무 많이 읽은 사람들까지도 설득해서 개종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변화했고 18세기 로코코 시대에는 바로크 양식에 프랑스 귀족들의 취향을 반영해서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장식'을 추구했다.

   프랑스 혁명은 미술에 대한 관념을 더욱 크게 변화시켰는데, 역사적 사건의 관심과 영웅적 주제를 다룬 그림들이 등장하면서 고대 그리스의 복고가 다시 일어났다. 신고전주의자 다비드는 고대 그리스 로마 조각상을 모사해서 자신의 작품에 적용했다. 그러자 낭만주의자 들라크루아는 그리스 로마 조각상의 모사를 거부하고 소묘보다는 색채가, 지식보다는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바로 나타난 사실주의미술에서의 혁명이었는데,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실을 원했다.

   그 후에 등장한 인상주의는 눈으로 보는 것이라는 관념이 더할 수 없이 크게 확대된 사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인상주의자들이 일으킨 채색 표현에서의 혁명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했던 형태 표현에서의 혁명에 비견할만한 것이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각 대상의 색은 고유색을 지닌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에서 여러 색조가 혼합된 결과라면서 과학적인 정확성으로 시각의 움직임을 화폭에 담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곰브리치는 인상주의 이후 우리는 아는 것보는 것을 서로 확실하게 분리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이제 미술가들은 그가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그리는가에 있어 오직 자기 자신의 감각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게 되었다고 설파한다.

   곰브리치는 이렇게 미술가들이 어떤 생각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펼쳐 보이면서, 개개인 미술가의 생각과 작품이 바로 미술사를 이룩한 것이라고 말한다. 곰브리치의 이러한 개별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위주의 서술은 자칫 명작거장위주의 영웅주의적미술사가 될 수 있다는 염려도 있다. 그렇지만 그의 서술 속에는 미술은 각 시대의 역사, 사회,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맥락이 녹아있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20세기의 고전 반열에 올랐다. 미술 전공자뿐만 아니라 미술을 통해 진정한 자기 확장을 원하는 일반 독자, 대학생에게 필독서가 되었다. 미술을 이해하고 즐기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하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아는 것과 보는 것의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또 요즘은 누구나 쉽게 해외여행을 한다. 여행지에서는 많은 건축물과 미술작품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 책은 짙고 깊이 있는 유럽 여행의 준비를 위한 실용적 길라잡이로도 아주 유용하다. 서양의 역사와 미술의 지식을 얻을 수 있고, 미술작품의 감상법을 터득할 수 있고, 또한 미적 감수성을 배가할 수 있다.

  

남궁산 (판화가)

생명연작판화와 장서표(EX-LIBRIS)’판화를 주로 작업해왔으며, ‘예술의전당’, ‘학고재’, ‘동산방등에서 30여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최근에는 인문학과 미술을 결합한 글쓰기와 강연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로는 새겨 찍은 그림 판화』 『인연을 새기다』 『문명을 담은 팔레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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