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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놀자⑩>대통령의 농담



역대 미국 대통령.<사진출처: 데일리투머로우> 

 

 

트럼프까지 역대 대통령이 45명이나 되다보니 「미국에서는 가끔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혹은 「좋아하는 대통령」을 고르는 여론조사를 하곤 한다. 어떻게 해도 공통적으로 세 사람은 꼭 들어간다.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누구나 아는 것처럼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미국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군인 출신이었다. 큰 키에 위엄있는 모습으로 제왕의 풍모를 갖췄다. 실제로 왕처럼 처신했고, 당시의 미국인들도 모두 대통령을 「선출된 왕」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조지 워싱턴은 「종신대통령으로 추대하자」는 여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8년 재임 끝에 스스로 물러났다. 대통령질이 왕좌와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준 것이다.
   3대째인 토머스 제퍼슨은 사실 정치가라기보다는 학자나 예술가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철학자라고 해도 된다. 폭넓은 지식과 교양있는 처신으로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인물이었다. 다만 그는 숨겨진 사생활로 해서 훗날의 역사가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한다. 자신의 노예였던 흑인여성을 정부로 삼아서 혼혈 자식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의 가장 큰 공로는 바로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사들인 일이었다. 당시의 미국 영토는 애팔래치아 산맥 동쪽 지역만으로 지금의 1/3정도에 불과 했다. 루이지애나는 현재의 루이지애나주만이 아니라, 미시시피강을 중심으로 북미대륙의 중부 전역을 의미했다, 이 광대한 땅을 1,500만 달러에 사들였다. 이 지역을 차지하면서, 무주공산인 서부로 진출하는 기반을 삼기도 했으니 제퍼슨은 사실상 오늘날의 미국 영토를 확정한 셈이다. 북미대륙에서, 추운 캐나다와 건조하고 더운 멕시코를 제외하고 노른자위 땅을 독차지한 것이다. 미국 번영의 근원이 넓고 풍요로운 국토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국인들이 제퍼슨을 좋아할 만도 하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노예해방의 이미지로 해서 거의 「성자」같은 대접을 받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링컨의 공로는 노예해방보다도 미국의 연방제를 지켜낸데 있다고 평가받는다.
   노예제도를 둘러싼 갈등으로 결국 남부 11개주가 남부연합을 결성하고 제퍼슨 데이비스를 대통령으로 선출했을 때 북부에서는 「아예 두 국가로 갈라서자」는 여론이 들끓기도 했다. 하지만 링컨은 전쟁을 불사하면서 미국을 하나로 지켜냈다. 남북전쟁은 노예해방을 위한 전쟁이 아니었다. 「통합이냐, 분리냐」를 다툰 전쟁이었다. 「노예해방」은 「또 하나의 목표」일 뿐이었다.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합중국을 구하는 일이 이 투쟁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노예제도를 유지하거나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노예를 단 한 명도 해방하지 않고 나라를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만약 모든 노예를 해방해서 나라를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만약 일부 노예를 해방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는게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면, 그 길을 택하겠습니다. 내가 노예제도와 흑인에 대해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은 나라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링컨은 남북전쟁에 임했고, 미국을 통일된 연방국가로 지켜냈다. 만약 당시에 남부의 분리독립을 허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차례차례로 각 지역이 독립을 선언해서 미국은 여러개의 나라로 갈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미국의 위상은 오늘날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미국의 독립을 이끈 워싱턴.
   영토를 확장하고 연방제를 확립한 제퍼슨.
   연방의 분열을 막은 링컨.
   미국인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들이다. 그 외에 시어도어 루스벨트나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꼽기도 하지만, 빠지지 않는 또 하나의 대통령이 있다. 조금 의외지만 바로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다.(1981~89 재임) 

 




   그의 재임시절을 지켜본 미국의 중장년층들은 지금도 그 이름을 들으면 입가에 미소부터 떠올린다. 영화배우 출신인 그는 농담의 대가였다.
   사실 톱스타는 아니었다. B급 영화의 스타였다. 「시간을 잘 지키고, 감독에게는 순종하고, 동료들에겐 친절했다」고 한다. 이런 성품으로 전미 「배우조합」을 이끌었고 정계에 진출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두 번 당선했고, 1980년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인 지미 카터를 압도적으로 이겨버렸다.
   레이건은 영화를 제외하고는 어느 분야든 전문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다. 독서를 많이 했지만 대중잡지나 대중교양서 정도였다.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참모나 장관들과의 회의 도중에 졸고 있더라는 목격담이 자주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솔직하고 소탈했다. 가식이 없었고, 재치있는 농담으로 국민들의 호감을 샀다. 엄청난 기억력과 순발력을 자랑했다. 미리 준비된 원고 속 농담들이 아니었다.
   심술궂은 기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레이건의 지적 수준을 까발리려고 했다. 어느 기자회견에서 레이건은 경제전만에 대해 「불경기는 있을지 모르나 공황은 없다」라고 말했다.
   한 기자가 물었다.
   “불경기와 공황은 어떻게 다릅니까?”
   결코 「유식하지 못한」 대통령이 어떻게 설명을 할까? 다들 웃음을 깨물며 지켜보는데, 레이건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 친구가 실직하면, 그 건 불경기예요. 당신 본인이 실직을 하면 그때는 경제공황이 온 거지요.”
   기자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박수를 쳤다. 레이건은 한 마디 더했다.
   “그럼 호경기는? 그 건 지미 카터가 실직했을 땝니다.”
   지미 카터는 대통령선거 때의 상대다. 그가 실직했을 때란 자신이 대통령이 된 시기를 말한다. 기자들은 아예 일어서서 박수를 칠 수 밖에 없었다. 농담도 이 정도면 거의 예술의 경지다.
   이런 레이건이 「좋아하는 대통령」 순위에서 늘 상위권이란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이 이런 농담을 주사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엄청난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정치가 코미디냐, 어디서 농담이냐 하지만 우리 정치인들은 정말로 모르는 걸까? 70년대, 80년대 스타일에서 조금도 변화가 없는 그들의 경직성이, 국민들에겐 오히려 코미디로 보인다는 사실을.


 

 고원정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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